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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문연극(인)'이라는 개념적 모순과 차별

“Theatre is a rehearsal for the revolution.”  - Augusto Boal, 1974


작년 서울연극협회는 정회원 입회를 위한 심사 과정 중에서 두 명의 심사위원을 통해 어느 한 극단의 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는 진씨를 심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 심사위원은 심사를 받는 진씨의 작품 관련 증빙자료를 보며 작품의 출연진이 연극을 '업'으로 하고 꾸준히 활동하지 않는 비전문연극인들로 구성되었다는 말과 더불어 공연을 올렸던 장소가 '이음아트홀'이라는 이유를 대며 '전문연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이 극단의 출연진들이 매년 2-3편의 연극을 오랜시간 올려왔으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활동증명까지 받았으나 장애인복지법상 정의된 '장애인'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이들이었고,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서 심사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즉, 장애인이 출연하는 작품은 '전문연극'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회원 자격을 승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장애인 극단의 공연은 전문연극인의 공연이 아니라고 발언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이 사건에서 심사위원이 발언한 말과 개념들을 쪼개고 들여다보며 그 모호한 논리적 모순을 지적해보고자 한다. 


"이 작품은 '전문연극'이 아닙니다"

"이분들은 '전문연극인'이 아닙니다" 


먼저 '전문연극', '전문연극인'이라는 개념 중 '전문'이라는 단어부터 살펴보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전문' 이란 "어떤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오직 그 분야만 연구하거나 맡음. 또는 그 분야."를 의미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전문연극(인)이란 연극이라는 분야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경험들을 축적한 이들이거나 해당 분야에 지속적으로 종사하며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상당한 지식과 경험'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되는가? 

프랑스 철학자 미셸푸코(Michel Foucalt)에 따르면 지식은 결코 중립적이거나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조건 속에서 권력과 결합하여 형성되는 담론적 산물이다. 즉, ‘전문성’이라는 개념 또한 객관적 기준이라기보다 어떤 제도와 권력이 승인하고 재생산하는 방식 속에서 구성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누가 전문연극인으로 인정받는가는 개인의 능력이나 경험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판단하고 승인하는 제도적 장치와 권력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전문성의 기준은 점차 제도화되었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예술활동증명제도’이다. 이 제도는 일정한 활동 이력과 증빙을 통해 한국에서 예술인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국가가 예술인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예술활동증명, 승인과 비승인 기준의 모호함   

예술인복지법에 기반한 예술활동증명제도는 일정한 공연 활동 경력을 기준 삼아 ‘전문연극인’으로 승인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제도의 타당성에 대한 비판 역시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최근 3년간 예술활동증명 불인정 사례' 자료에서 미승인의 큰 이유로 수입 금액, 편수 부족 등과 같은 정량 요건 미충족을 들었지만 AI를 활용한 위조를 통해 승인이 된 사례와 오랜시간 공인된 활동을 했지만 미승인된 사례 등이 적발되어 큰 파문이 일었다(뉴스핌, 2026; 여성신문, 2026). 이러한 상황은 제도가 지향했던 ‘객관성’이 오히려 형식적 기준에 갇혀 왜곡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또한 이 제도는 장애인의 관점에서 볼 때 구조적 배제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정신적·인지적 손상을 지닌 이들의 경우 신청 과정에서 요구되는 복잡한 서류 준비와 정보 이해, 행정 절차 수행 자체가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정보 접근성과 언어 이해의 어려움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이며 이러한 조건 속에서 일부 예술인들은 애초에 신청 과정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 채 배제된다. 결국 예술활동증명제도는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정량화된 기준과 행정적 절차를 중심으로 작동하면서 오히려 다양한 예술 실천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연극을 '업(業)'으로 하고 꾸준히 활동하셔야 합니다"

사실 전씨의 심의 과정에서 출연진 대다수는 예술인자격증명까지 통과한 연극인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증명은 서울연극협회 정회원 자격 기준에서 결과적으로 무효했으며, 그 이유로 "연극을 업으로 하고 꾸준히 활동해야한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문연극인'들은 과연 이 심사위원이 말한 '업'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가? 막스 베버(Max Weber)는 '업(Beruf)’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개인이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삶의 소명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면서 '업'은 점차 생계 유지 수단으로서의 직업 개념에 접속하게 되었고, 나아가 임금 노동 체계 속에서 수입 발생 여부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의 제도는 ‘업’을 경제적 수익 창출 여부로 판단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활동의 지속성과 노동의 과정 자체를 간과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다수의 연극인들은 하루 수 시간에서 길게는 종일에 이르는 연습과 훈련, 창작 과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는 명백한 노동의 형태로 볼 수 있다. 리허설, 발성 훈련, 동선 연습, 작품 분석, 협업 과정 등은 모두 전문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실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동은 수익으로 즉각 환원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대 사회에서 ‘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 연극의 경우 제작 기간 동안의 집중적인 노동과 공연 이후의 공백이 반복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어 일정한 소득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는 ‘업’이 가진 개념적 표상은 현실과 괴리를 보인다. 결과적으로 전문연극인들은 분명히 지속적인 노동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익 중심의 '업'이라는 기준 속에서  ‘비전문’ 혹은 ‘취미 활동’으로 재해석되는 모순적인 위치에 놓이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 배제의 관점에서 본 장애인과 연극인의 교차성

사실 장애라는 개념은 유물론적 관점에서 볼 때 역사적으로 노동현장에서의 배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장애인'이라는 범주는 근대사회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적 노동 체제에서 배제당한자들이자 불안정 노동자 집단을 가리킨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김도현, 2019). 이러한 구조는 연극이라는 노동 영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수익과 생산성을 중심으로 ‘업’을 판단하는 기준 속에서 불안정한 노동 구조를 지닌 연극인들은 이미 취약한 위치에 놓이며, 이러한 조건은 장애인이 역사적으로 경험해온 노동 배제의 구조와 교차하는 지점을 형성한다. 즉, 연극인들이 겪는 불안정 노동과 낮은 수익 구조는 노동을 수익 중심으로 평가하는 체계 속에서 주변화된다는 점에서 장애인이 노동 가능성의 기준에서 배제되어 온 차별 구조와 유사한 논리로 작동한다. 결국 장애인과 연극인은 노동과 생산성을 중심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동일한 기준 속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배제되고 있다. 결국 '업'이라는 개념이 '전문연극인'의 자격 기준에 대한 잣대로 들어오게 될 경우 크나큰 모순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음아트홀은 장애인 공연만 올리는 곳이라 전문 예술 공연이 올라가는 공간으로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손상을 지닌 연극인들은 애초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심사위원이 말했던 소위 '전문 예술 공연'이 올라가는 공간의 가장 상징적인 예시는 연극의 메카라고 불리는 대학로 지역의 소극장들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극장들은 대부분이 지하에 위치하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경우가 많기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들과 같이 신체적인 손상이 있는 연극인들에게는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실제로 2017년 신재 연출가가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진행한 제로셋프로젝트를 보면 대학로의 120곳 공연장의 시설 접근성을 조사한 결과 휠체어가 완전하게 접근 가능한 극장은 14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는 신체적 손상을 지닌 연극인들이 문화생산자로서 이음아트홀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예술 공연이 올라가는 공간에 진입조차 못하는데 어떻게 공연을 올려 전문연극인임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또한 반례로는 서울시극단이 주관하고 노들장애인야학과 협력하여 신재 연출가가 작업했던 <등장인물>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오래 살다가 지역사회에 나와 살아가고 있는 최중증발달장애인들의 노래와 움직임, 춤으로 표현되었다. 출연진의 대부분은 '연극'이라는 장르 안에서 처음 데뷔하는 상황이었으나 본 작품은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전문예술 공연장에서 올려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속성을 떠나 공간의 상징적 의미로 바라볼 때 심사위원의 논리에 따르면, 여기에 올랐던 최중증발달장애인의 경우 입회원 자격 조건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인가? 결론적으로 '전문연극'의 기준은 근대 이후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와 제도화된 예술 시스템이 만들어낸 일종의 분류 체계에 가깝고, 객관적 사실이 아닌 특정한 지식 체계 속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정당화하며 재생산된다는 점에서 볼 때 뫼비우스의 띠처럼 탈출 불가능한 자기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브라질의 연극연출가 아우구스토 보알(Augusto Boal)은 연극을 단순한 표현 양식이 아니라 사회를 인식하고 변혁하는 실천적 도구로 보았다. 이 관점에서 연극은 무대 위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을 변화시키는 행위로 확장된다. 서울연극협회는 연극이라는 장(field) 안에서 창작의 기준과 구조를 설계하며, 창작 주체를 승인하거나 배제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핵심 기관이다. 동시에 과거 특정 권력 구조에 저항하며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분명해진다. 연극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실천이라면, 협회는 그 변화를 무대 밖에서도 실현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전문연극’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 만든 기준 속에서 순환하는 모순된 권력으로 남을 것인가.


- 윤태현 (장애학, 문화예술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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