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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입>에 관한 김기란의 글을 읽고
  • 작성자 : 차병호
  • 2012-03-20
  • 조회수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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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란의 「지구촌 다문화시대의 삶의 균열」을 읽고

 

송선호 (연출가, 극단 유랑선 예술감독)

 
 

 

 
   『공연과 리뷰』(2011년 겨울호)에 실린 김기란의 글을 읽고 해당작 <침입>(요나스 하센 케미리 작, 홍재웅 번역⋅드라마투르그)을 연출한 입장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지면을 요청했다. 작품에 대한 평은 연출 작업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해주고, 연출자가 자기 작업을 최종적으로 정리하는데 도움을 준다. 때때로 비판적인 글을 대할 때면 상심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비판적 시각을 존중하는 태도 또한 연출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라는 생각에 차분히 논의들을 지켜보게 된다. 또 그 주장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을 때는 반론을 제기하여 논의를 심화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며, 어떤 면에서 그것은 창작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일 수도 있기 때문에 평론에 대한 긴장감을 늦춰본 일이 없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글은 반론이 아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김기란의 글에 드러난 문제점을 짚어보고 몇 가지 ‘당부를 전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꼭 써야 하는 글이지만 연출자로서 이 시간이 참 곤혹스럽다.

  우선 제목부터 이해할 수 없는 글이었다. ‘지구촌 다문화시대의 삶의 균열’. ‘다문화시대’란 무엇인가. 글을 쓰기 위해 뽑아낸 핵심어일 텐데 애매한 용어다. ‘다문화주의’는 분명히 <침입>의 키워드다. 드라마투르그의 글「스웨덴과 다문화주의」에서도 다뤘듯이 스웨덴은 국가 정책으로 ‘다문화주의 모형’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고, 그것을 근간으로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차별되는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을 계기로 이 ‘다문화주의’에 대해 논의가 일어나길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다문화주의’가 아니라 ‘다문화시대’라는, 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용어가 제목으로 등장한 것이다. 왜 이 용어를 선택했으며, 이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정작 본문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뿐만 아니라 본문은 제목과 상관없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공허한 제목은 글에 무게를 더해주기는커녕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혼란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지구촌 다문화시대의 삶의 균열」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 부분은 공연 전반에 대한 해설로 이 작품이 “황당한 조작에 무비판적으로 조종되는 우리들의 무의식을 성찰”하는 작품이라는 말로 매듭을 짓는다. 다음 부분은 작품의 줄거리다. 미국 국방부를 연상시키는 오각형 무대와 거기서 벌어지는 행위가 지니는 “정치적 함의”, 그리고 “이들의 문제를 대하는 우리들의 진지하지 못한 호들갑, 값싼 동정과 연민이 배어나는 태도를 환기시켜 이슬라모포비아라는 낯선 증후군의 구체적인 증세를 확인시키는 기능”을 했다고 기술한다. 마지막 부분은 아마도 이번 공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으려 했던 것 같다. 논지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요약해 보면 “사건의 주체와 타자가 정확히 지정되는 방법으로 공연”되어서는 안 되고, “고정적으로 보이는 것이 조작되거나 불온하게 해석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관객들”에게 열어두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당연한 얘기다. 그게 아니라면 왜 이 공연을 하겠는가. 그런데 정작 그렇게 공연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래서 실패했다는 것인가. 그러나 다음을 아무리 읽어봐도 그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단지 “소비되고 말 감정에 관객들이 이입되는 것을 방지하려 했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호응하지 못했고”, “펜타곤이라는 상징 이외(에)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공간은 극행동을 제한하는 역효과를 냈”으며, 이슬라모포비아의 시선이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다중화되지 못함으로써 그 안의 사건만이 무대 위에 소환”된 결과 “『침입』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우리’들의 문제가 아닌 ‘그들’만의 문제로 귀결되어버렸다”다는 식으로 결론을 맺는다.

   이에 대해 일단 글쓰기 방식부터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기란은 작품의 전반적 해설과 줄거리 기술에서 거의 모든 정보를 공연팀이 제작한 프로그램에 의존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공연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제공하는 최소한의 정보다. 그런데 평론을 맡은 사람이 특정 공연을 평한 글의 대부분을 프로그램에 실린 정보에 의존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몇 부분은 인용 부호 없이 프로그램에 실린 원고를 그대로 가져와서 마치 자신의 해설처럼 엮어냈다. “흡사 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2백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킨 터키 정부의 쿠르드족 탄압”은 연출의 글「희생자는 누구인가」에서, “아불카셈이라는 고유명사는 형용사와 동사로 변용되면서 9⋅11 테러 이후 유럽 사회에 작동 중인 ‘컬러 아이덴티티’를 언어가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는 드라마투르그의 글 중「작품 소개」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공연팀이 제공한 자료에 담긴 길고 짧은 표현들을 가공하여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글을 어떻게 평론이라고 할 수 있는가. <침입>은 우리에게 낯선 나라 스웨덴의 이민자 문제를 다룬 최근작이다. 만약 이런 해외 신작을 제대로 평하려고 마음먹는다면 평자는 아마 제작진 이상의 노력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김기란의 글 전체에서 우리가 제공한 것 이외에 그 어떠한 정보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면 희곡은 읽었는가. 공연팀에 대본 요청이 없었으니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스웨덴어 원본이나 그 밖의 외국어로 번역된 대본을 구입하여 읽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희곡을 읽었는지 여부에 앞서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의 공연 대본이 원본 희곡과 크게 다르다는 데 있다. 많은 장면이 첨가되고, 각색되었다. 평자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고 평론가가 꼭 희곡을 읽고 나서 공연을 관람할 필요는 없다. 또 원작과 공연대본의 차이를 언급해야 할 의무도 없다. 일부러 희곡을 읽지 않고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눈앞에 펼쳐지는 공연만을 철저히 평하겠다는 의도로 관람하는 평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그런 글이야 말로 본격적인 ‘공연 분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연 분석’을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론과 사전 준비가 필요하지 않은가. 김기란의 글에서 그런 특별한 시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도 저도 아니면 과연 ‘무엇으로’ 작품을 평하겠다는 생각이었을까.

    공연에 대한 문제 제기도 공연 참가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글의 앞부분에서 평자 스스로가 이 공연은 “서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다양하게 조망한다”, “우리들의 무의식을 성찰하려는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서구 그들만의 문제라고 단언할 수 없는 참담함이 공연 내내 무겁게 공연장을 감쌌다”, 오각형의 “무대와 무대 위 행위가 지니는 정치적 함의가 강력하게 부각된다”, “이슬라모포비아라는 낯선 증후군의 구체적인 증세를 확인시키는 기능을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앞부분에서 얘기한 바로 그 “공간”이 “역효과를 냈”고, “‘그들’만의 문제로 귀결되어버렸다”고 단언한다. 한 사람이 쓴 글인데 그 안에서 일관성을 찾을 수가 없다. 또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되어 있질 않아 만든 쪽에서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 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설령 대부분의 관객이, 아니 모든 관객이 그렇게 봤다 하더라도 전문적인 평론이라면 그 근거를 명확한 논리로 설득력 있게 기술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부분이 “호응”하지 못했는지, 어떻게 “역효과”를 냈는지에 대한 기술이 빠져 있다. 만약 공연에서 그런 문제점을 발견했다면 그 부분에 분량을 할애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런 문제 제기는 사적인 단상에 불과한 것이지 평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기존 평론의 비판적 어투를 어설프게 모방했다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명백한 오류도 있다. 극중 인물 유셉의 아버지가 “유셉에게 서구에서의 삶에 적응하기 위한 비굴에 가까운 태도를 조언한다”고 했는데, 원작에도 공연대본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극의 내용을 잘못 이해했거나 아니면 잘못된 자료를 인용했거나 둘 중 하나다. 또 ‘사과 따는 사람’에 대해서도 결국 그가 “본국으로 강제 소환된다”고 했는데, 어떤 소환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사과 따는 사람은 소환될 처지가 아니다. 그는 체포되어 스웨덴에서 추방당한다. 이 부분은 틀림없이 연출의 글을 잘못 옮긴 것이다. 이런 정도의 오류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반박할 것인가.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공연을 관람하지 못하고 평을 읽게 될 사람, 또는 자료로서 이 글을 접하게 될 미래의 독자를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외에 김기란의 평을 읽고 느낀 점들은 ‘당부의 말’ 속에 담아 전하고자 한다. 첫째, 원고 의뢰를 받았더라도 정보가 부족하거나 해당 공연이 별 의미를 생산하지 못했다고 판단되면 ‘안 쓰는 것’이 맞다고 본다. 왜 그런 공연에 대해 평을 해야 하는가. 만약 그래도 평을 해야 한다면 평론가로서 일종의 윤리적 책무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왜곡이나 은폐, 또는 무책임, 불성실로 빚어진 공적 손실, 아니면 위법 여부 등이 동기가 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게 아니라면 의미도 찾지 못한 공연을 굳이 평할 필요는 없다. 평론이 공연을 다뤄주지 않으면 제작자, 작가, 연출가는 자기 작업의 부족함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니 ‘무언의 평론’도 대단히 중요한 행동이다. 특별히 쓸 말도 없는데 애써 채운 글은 아무리 장식하고 덧칠을 해도 독자를 힘들게 만들 뿐이다.

    둘째, 평자 개인의 성패와 상관없이 평론은 그 시대의 작품과 환경에 싫든 좋든 영향을 미친다. 또 이미 사라져버린 공연을 기록한 평론은 미래의 독자들에게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론은 항상 공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이것은 평론의 책임의식과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평론이 블로그의 글과 다른 점은 뭔가. 김기란의 글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블로그였다. 공적인 태도나 책임의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극에 관한 정보를 일부가 독점하는 시대는 지났다. 평론가에 버금가는 정보량으로 충실하게 내용을 채운 매끄러운 글들이 블로그에 올라올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적인 평론과 블로그의 글은 다르다. 평론을 평론일 수 있게 하는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이 공적인 태도와 책임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평론은 ‘의미를 생산하는 기록’이며, 그런 면에서 ‘공연의 연장’이라는 점도 다시 한 번 생각해 주기 바란다. 전문적인 평론은 그것이 어떤 의미를 생산하게 될 지에 대해 먼저 숙고한 후에 쓴 글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감상문과의 차이점이다. 일정 부분 미덕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의미 생산’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전문적인 평론으로 취급할 수 없을 것이다. 감상문은 쓰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평론은 그렇지 않다. <침입>에 대해 평한 김기란의 글을 몇 번이나 정독했지만 어떻게 읽어도 전문매체에 실린 본격적인 평론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구촌 다문화시대의 삶의 균열」은 과연 어떤 의미를 생산하려 했으며, 그 결과 어떤 의미를 생산했는가. 모든 평론은 개별적 의의와 동시에 한계를 지닌다. 완벽한 작품이 없듯이 완벽한 평론도 없다. 심지어 ‘아마추어의 감상문 수준에도 못 미치는 글’이라는 표현도 자주 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런 평론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기록을 소중하게 다루는 이유는 바로 평론이 생산해낼 수 있는 그 ‘의미’ 때문이다.

    셋째, 자기 자신의 관점과 태도를 분명히 드러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덧붙인다. 반복하지만 ‘무엇으로 평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해박한 지식을 뽐내는 ‘서재평론’도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얼마나 해박한가가 문제일 뿐이다. ‘인상비평’ 역시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주관이 강하게 개입된 만큼 깊이를 갖춰주면 좋은 평론이 될 수 있다. 물론 ‘객관적 비평’이라면 관점과 태도가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 방법론에 대한 평자의 태도를 근거로 글을 읽는다. <침입>을 평하려면 우선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 ‘나는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었는가’하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을 발견했는지에 대해 스스로 자문해야 옳다. 글 뒤에 숨어있든 전면에 나서든 평론에는 ‘자기 자신’이 솔직하게 담겨있어야 한다. 그것이 빠진 상태에서 쓴 글은 읽기 괴롭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난 그런 질문과 발견의 과정은 이미 거쳤고, 그 뿐 아니라 난 이 공연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식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생략하고 쓴다. 그러면 독자는 ‘한 계단 위에서 작품을 내려다보며 평가하는 듯한 글’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때때로 평론이라기보다 ‘평가서’라는 느낌을 주는 글도 있다. 그리고 정말 이 둘을 혼동하고 있는 평론가들도 있는 것 같다. 김기란의 문제 제기에서도 그런 인상을 받았다. 공연팀이 제시하는 정보에 의존하여 공연을 관람하고, 그것을 근거로 평의 대부분을 채우면서 과연 ‘한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며’ 공연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할 수가 있는 것인가. 백 보 양보하여 ‘평론은 그럴 권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 제기에 근거가 없으니 아쉽게도 받아들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요지는 매우 쉽게, 편리한 방법으로 공연을 관람하고, 안일하게 기술하며, 스스럼없이 비판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연을 묘사하는 능력이다. 역사와 사회를 보는 안목, 연극에 대한 지식과 경험, 상상력과 창의력을 두루 갖춘 경우라도 정작 무대와 오브제, 연출, 연기를 기술하는 방법이 미숙하다면 그 글을 전문적인 평론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회화를 묘사하는 능력’, ‘연주를 묘사하는 능력’과 마찬가지로 ‘공연을 묘사하는 능력’도 전문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지구촌 다문화시대의 삶의 균열」의 ‘공연 묘사’에 대해서는 논할 것이 없다. 평자 스스로 그 구성과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길 바랄 따름이다.

   <침입>은 이슬라모포비아로 야기된 이민자의 희생을 다룬 작품이다. 스웨덴은 대표적인 복지국가이며 적극적인 이민자 통합 정책을 쓰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북유럽 사회와 정책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도 작용했겠지만 그보다 우리에게 이상적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나라로 알려진 스웨덴의 현실을 다룸으로써 증폭되고 있는 반이민 정서의 심각성이 오히려 부각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작품을 선택했다. 공연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이야기들도 오갔다. 이슬람 문화와 전쟁, 유럽으로 이주한 난민들, 우리 안에 내재된 배타성 등이 주된 소재였다. 하니프 쿠레이시(Hanif Kureishi)의 작품들이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고, 이민자를 희생자로 한 이야기가 아니라 역으로 그 내부의 악을 그린 작품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관객도 있었다. 매우 중요한 지적이며, 그런 작품들을 미처 검토하지 못한 점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김기란의 글에서 이보다 심층적인 논의를 기대했기 때문에 실망이 더 컸을 지 모른다. 보다 성숙한 연극 문화에 대한 바람이 과하여 거친 표현이 걸러지지 않았다면 그 점 양해를 구하며, 혹여 평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면 그에 대한 지적 역시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2012.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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