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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진 [연극인] 3호에 실린 고재열 편집위원 글에 대한 반론 - 오늘의 서울연극 23호 (TTIS 23)
  • 작성자 : 서울연극협회
  • 2012-08-19
  • 조회수 : 107
  • 첨부파일 :
웹진 [연극인] 3호에 실린 고재열 편집위원 글에 대한 반론┃백승무 |좌담 / 정책 기록실

http://cafe.daum.net/dramarecord/iZNw/7 

미련함에 대한 미련: 차이는 차별과 다르다

 

 

 고재열의 '반상차별론'에 대한 반론, 혹은 변명

(*이글은 격주 웹진 [연극인] 3호에 실린 고재열 편집위원의 글에 대한 반론입니다.)

 

백승무(TTIS 편집위원)

고재열 편집위원은 <왕후장상의 연극이 따로 있지 않다면>(http://webzine.e-stc.or.kr/03_story/column_view.asp?Idx=74&CurPage=1&KeyWord=&SearchName=)이란 글에서 서자, 상놈 취급당하는 '대중극'에 대해 비평과 언론이 차별과 무시의 편견을 걷어내고 취할 건 취하고 배울 건 배우라는 '통섭론'을 주장했다. 부당한 차별이 있으면 철폐돼야하고, 유익한 차이가 있으면 보고 배울 일이며, 편견은 벌을 주고 게으름은 꾸짖어야 한다. 하지만 역할과 기능이 다르고, 자질과 특성이 이질적인 두 경향을 무리하게 저울대에 올려 균형을 잡으려 하고, 균형이 맞지 않으면 통섭의 이름으로 혼종교잡까지 해야 한다는 그 논지는 무리이고 억지이다. 그렇다고 이 반론이 고 편집위원의 주장을 ‘다른’ 주장이 아니라 ‘틀린’ 주장으로 내몰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이 글에서는 고 편집위원이 ‘반상론’의 주범으로 지목한 비평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고자 한다.

 

 용어정리부터 하자. 대중성에 대한 정의가 어려운 점을 감안한다면 ‘대중극’보다는 ‘오픈런 공연’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 반상 중 ‘상류층’에도 대중성에 대한 지적이 많은 걸 보면 그것이 오픈런만의 독점적 개념이 아닌 듯하니 일단 반상 용어를 ‘정극’과 ‘오픈런’ 공연으로 합의하고 시작하자. 배포를 부려본다면 ‘상업극’이란 용어가 더 적절하나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바 레퍼토리 극장이 전무한 우리 현실을 보면 ‘오픈런’이 더 적합해 보인다. 공연기간과 공연성격이 하나로 묶이는 세태를 고려한 것이다.

 

 우선 비평은 왜 오픈런 리뷰에 인색한가. 한국 연극평단의 특성상 보통 개막 첫 달에 비평이 쏟아진다. 이것 또한 레퍼토리 극장이 전무한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따라서 개막 초기에 비평의 눈에 띄지 않으면 리뷰 수혜(?)를 받기가 사실상 힘들어진다. 단기 공연과는 달리 입소문에 의지하는 오픈런의 경우 개막 첫 달에 바로 비평의 눈에 포착되기란 쉽지 않다. 오픈런은 서둘러 공연을 봐야한다는 강박도 덜한지라 첫 달 한판승부에서 밀리기 십상이다.

 

그래도 공연이 좋으면 리뷰를 쓸 만하지 않겠는가? 맞다. 그런데 누가 쓰나? 없다. 평론가가 없다. 당장 써야할 단기 정극도 많은 데 오픈런까지 오지랖을 넓히는 평론가는 극히 드물다. 생계형 전문평론가가 없기 때문이다. 2순위, 3순위 작품까지 필력을 발휘할 생산력 높은 평론가가 없다. 현재 연극판에는 생계형 평론가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생산량과 품질을 양손에 쥘 수 있는 평론가가 없다. 우리 사회에 대중적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연극평론가가 없다는 건 불행 중 불행이다. 그나마 공연(연극이 아니라)전문기자가 몇몇 있다는 게 최악을 면해주고 있을 뿐이다. 공연 수에 비해서 비평 수는 절대부족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비평들이 필수 작품은 빼놓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평론 양극화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선도투쟁론이 앞설 수밖에 없다. 적은 자원으로 최대효과를 달성하는 현 체제를 비판하려면 오픈런까지 손을 뻗지 못하는 비평의 게으름과 무능력을 탓할 일이지 오픈런이 무시당한다고 오해할 일은 아니다. 이렇게 정리하자. 현재 비평은 전필 이수하느라 교양과목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하물며 복수전공이나 교생실습은 언감생심이다.

 

“당신의 말 속에는 여전히 오픈런을 상놈 취급하는 편견이 있지 않는가? 왜 오픈런은 2순위, 3순위고 맨날 부전공인가? 당신도 역시 반상주의자다.”

 

이는 비평의 역할(기능)과 목적(지향)을 혼동한 질문이다. 비평의 역할은 연극수준을 높이고 그 역량을 강화, 관극문화를 고양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평이 이런 역할을 목적으로 삼지는 않는다. 역할이란 목적을 추구한 결과로 따라오는 효용과 공익이다. 비평의 목적은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통찰하며 현실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는 기타 등등. 이 지면이 비평의 목적을 설교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그치지만 비평의 목적과 그것이 종국에 가져오는 역할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설명이 됐겠다. 비평의 목적이 그렇다고 할 때, 오픈런이 그 대중성과는 무관하게, 그 진지함과 진정성과는 무관하게, 예술 서열의 말단에 위치하는 것은 엄연한, 그리고 당연한 사실이다. 반상차별론이 상업극의 경제적 욕망(?)을 정당화하는 탕평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의 우열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욕망의 우열만은 공시되어야 한다. 비평은 그 욕망을 꿰뚫어야 한다. 그래서 비평이 자신의 목적을 숭상한다면 선후관계에 있어서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 차별은 안 되나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 때로는 그 차이가 본질을 규정하기도 한다. 정극과 오픈런의 차이는 공연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의 본질에 대한 문제와 맞닿아있다(그리고 이 주제는 다급한 논쟁을 필요로 하고 있다).

오픈런이 경제적 욕망 너머를 욕망한다면 과욕이다. 포도를 따려면 제 손에 쥔 사과부터 버려야 한다. 오픈런 연출자가 오픈런 ‘전문가’의 딱지를 떼고 자신의 커리어를 다각화, 다양화하는 노력도 필수적이다. 제품 하나, 브랜드 하나로 생존하기는 힘들다. 메이커의 네임벨류를 키워야 한다. 고선웅의 [뽕짝]을 두고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메이커가 고선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뽕짝]은 맥락을 가진다. 작품을 봐야지 왜 연출을 보냐? 옛날에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역사주의 비평을 욕하며 이렇게 물었다. 결론만 말하면 ‘연출이 보이는 걸 어떡해!’ 오픈런 연출도 그런 맥락을 가져야 한다. 기업가치를 봐야지 한탕주의 작전주에 휩쓸릴 순 없기 때문이다.

감정을 실어 좀 다른 어조로 말해보겠다. 오픈런 불공평 논쟁은 전선도 명확치 않고 ‘배고픈 소크라테스-배부른 돼지’의 구도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상처와 아픔만 남기 마련이다. 없는 사람들끼리 도토리 키재기한다는 지탄도 가능하다. 한 배를 타고서도 주인입네, 객입네 베고 나누고 가른다면 눈살 찌푸리기 딱이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 논쟁하고 싸우고 흥분을 해야 한다. 그래도 사람보다 예술의 명이 더 질기기 때문이다.

생계고에 찌들리는 정극 연출가들은 자주 오픈런의 유혹을 받는다. 그래도 안 한다. 예술과 상업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그런 걸(?) 가르친 선생들이 ‘웬수’다. 배고픔은 정극 연출가들의 자존심이고 숙명이다. 덕분에 비평이 관심을 가진다. 아니 전제가 잘못 됐다. 자존심 가져도 되는 작품을 올리기에 비평이 관심을 가진다. "그 대중성과는 무관하게, 그 진지함과 진정성과는 무관하게" 비평의 마음을 끄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날 재미없는 연극이나 만들지.” 맞다. 일면 설득력이 있다. 정극 연출가는 관객에게 아부를 하는 게 아니라 싸움을 거는 기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비평 눈치도 보고 자신의 경제적 욕망이 들통날까봐 자기검열도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오픈런이 비평의 불공평에 딴지를 거는 것은 정극이 관객들의 외면에 불평을 하는 것과 형식구조상 별반 다르지 않다. 오픈런이 관객을 차지하고 정극이 비평을 점유하는 것은 형식논리상 공평하다. 이 형식논리를 혁파하기 전에 불공평 타령을 먼저 하는 것은 관객 양극화를 고착화시키고 예술의 질적 하락을 부추기는 거나 다름없다.

고 편집위원의 취지는 오픈런의 작품성을 인정하라는 주문이 아니라 문화경영학적 접근을 해보라는 충고였을 것이다. 관객을 흡인하는 “뭔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차용하는 지혜로움을 가지라는 권고이다. 비평과 언론이 그 길을 터주고 정극이 열린 마음을 가지라는 의도이다. 따뜻하고 충정이 느껴지지만 그건 기획자에게 할 말이지 창조자에게 할 말은 아니다. 먹잇감 때문에 사람으로 치면 서울-수원의 거리를 오가는 미련한 개미를 보고, 앉아서 먹이 잡는 거미의 기술을 배우라고 한다면 '대략 난감'이다. 너 줄 못 뽑니? 거미집 한 채만 쳐봐. 쉽고 안정적인 영업, 단기 고소득 보장!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모두의 희망사항이다. 비평도 권장할 덕목이다. 그렇다고 오픈런 비법 몇 개를 갖다 쓰라고 주는 건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주는 행위와 뭐가 다른가. 먹고살기 힘들다고 미친소를 키울 수는 없지 않는가.

고 편집위원 말대로 연극판은 힘들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즉효약도 없다. 용어부터 시작해서 정극과 오픈런을 가르는 기준은 뭐고, 그렇게 갈라서 얻는 게 뭔지 답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극의 고립화도 비판해야 하고 오픈런의 통속성도 비판해야 한다. 미련하게 굴지 말고 어떻게든 살 길을 택하라? 아니다. 그렇기에 손쉬운 대안의 유혹을 물리치고 더 멀고 더 가파른 길을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극은 그렇게 살아왔고 연극인은 그런 미련한 부류이기 때문이다. 그걸 가리켜 연극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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